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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잡담소

스페셜티 커피의 대모. 에르나 크누센

by 빈로그(BeanLog) 2025.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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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3편. 스페셜티 커피의 대모. 에르나 크누센

 


커피에 많은 영향을 준 위대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존재하는데 큰 영향을 주신, 고인이 되신 전설적인 인물에 대해 짧게나마 다루고 싶었습니다.


◆ 스페셜티 커피 용어의 창시자 ◆

1974년, 한 여성은 한 저널에서 요청한 인터뷰에 응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가 앞으로 커피 산업에 끼칠 파급력에 대해 그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을 겁니다.

Erna Knutsen ⓒdailycoffeenews

 

◆ 에르나 크누센. 1921-2018

​스페셜티 커피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언급한 그녀는 스페셜티 커피의 대모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1921년 노르웨이의 보되(Bod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1926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뉴욕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욕의 조선소에서 목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북유럽의 경제는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브루클린과 퀸즈에서 보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이 당시에 이탈리아 이민자들 사이에서 살았는데, 이들이 요리를 할 때 나는 향기가 천국 같았으며 이탈리아 음식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녀가 결혼한 남편들 모두가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에르나가 어린 시절에 사랑에 빠진 또 하나의 향기는 바로 커피 향기였습니다. 그녀는 노르웨이에서 살던 시절에 좋은 커피를 마시는데 익숙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커피만큼은 좋은 커피를 구매하였습니다.

에르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인 18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여성이 하루라도 빨리 집을 벗어날 방법은 이 방법이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속기와 타이핑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기술로 은행에 취직할 수 있었으며 이후 다양한 회사의 비서로 일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그녀 또한 즐겼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그저 받아쓰는 일에 그녀는 회감을 느꼈으며, 그 당시 여성들이 직장에서 받는 불공평한 대우에 지쳐있었습니다.

1950년, 그녀는 샌프란스시코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몇 년간 법률 회사에서 비서로 더 일을 한 그녀는 미국 몰라세스 회사(American Molasses Company)의 커피 부사장의 비서로 이직하게 됩니다. 그녀는 커피를 추출하고 마시는 것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커피 자체에 대한 흥미는 없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오직 규모가 큰 로스터리에만 자기 회사의 커피를 판매하였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커피에 대한 관점을 바꿔주는 계기가 생깁니다. 1968년, 샌프란스시코의 오랜 커피 중개 업체인 BC 아일랜드(BC Ireland)에서 버트 풀머(Bert Fulmer)의 비서로 취직합니다. 이 회사는 1885년에 설립된 오래된 회사로 향신료나 식물의 씨앗, 타피오카, 땅콩, 허브, 쌀과 같은 동양에서 넘어오는 상품들을 수입하는 업체였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비서실장'이라는 당시에는 생소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르나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회사에서 수입하는 커피들의 이동 과정을 장부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커피의 이동 과정을 이해하면서 소형 로스터리에 소량으로도 커피를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자신과 자신의 회사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당시에 BC 아일랜드의 커피 상인들은 자신들이 구매하는 커피를 용기 단위로 구입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에르나는 소규모 로스터들에게 봉지 단위인 소량의 커피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개척한 이 틈새시장은 성공적인 판매 루트가 되었습니다.

Erna Knutsen ⓒcovoyacoffee
 

그녀가 바꾼 커피 업계의 관행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녀가 일하던 당시 커핑룸(Cupping room)에 여성들이 참석하거나 커핑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다루려는 커피의 샘플(sample roasting)을 관찰하는 것도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커핑을 하면서 자신의 센서리 스킬을 향상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생기게 됩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만델링의 구매를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커피 판매 업자는 샘플 로스팅을 하였고 그녀는 그 만델링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만델링의 맛에 감탄하였고 인도네시아의 판매 업자에게 자신이 한 달 안에 컨테이너에 실려있는 모든 만델링을 팔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구입한 수마트라 만델링은 한 달 만에 모두 판매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적극적이고 끈기 있게 자신의 일을 처리했고 1973년, 드디어 커핑룸의 문이 그녀에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cupping ⓒunsplash

그녀의 커퍼(cupper)로써의 능력은 소규모 로스터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4년. <Tea & Coffee Trade Journal>과의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조달하고 판매하는 커피의 특별함을 표현하기 위해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Tea & Coffee Trade Journal ⓒteaandcoffee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마치 에르나가 인정받고 기억해야 할 공로는 여성으로서 개척한 길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개척한 수많은 공로들 중 가장 크게 인정받아야 할 공로는 바로 소규모 로스터들과 거래를 시작한 "소규모 무역"입니다. 그녀는 소규모의 로스터들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감격하였고 더 나은 커피 산업을 위해 그들과의 거래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1973년에 미국의 커피 소비량은 매우 저조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이 마시던 커피는 평범하였기에 인스턴트커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로스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커피 애호가들은 '좋은 커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커피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좋은 커피'의 조달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에르나는 이것을 빠르게 발견합니다.

1975년, 에르나 크누센은 자신이 '10년 안에 BC 아일랜드를 매입하겠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BC 아일랜드의 창립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85년에 이 회사를 매입하였고 회사 이름을 크누센 커피(Knutsen Coffee, LTD)로 변경합니다.

그녀가 회사를 매입하기 3년 전인 1982년, 그녀는 커피 로스터 간의 새로운 커피 협회 창립을 지원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은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새롭게 만들어질 협회의 이름에 'Specialty"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녀를 기억하다 ◆

에르나 크누센은 스페셜티 커피 커뮤니티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커핑을 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커피에 대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이 업계의 리더가 되었고 커피에 대한 영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커피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이룬 사실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노르웨이 사람이라는 것에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Golden Coffee bean 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SCA스페셜티 커피 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로부터 두 번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1991년 SCAA 공로상을 수상 받았으며, 2014년에는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창시자로 선정되었습니다.

Erna Knutsen ⓒcovoya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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